천년강국 고구려

조선의 첫 봉건국가인 고구려는 B.C. 277년~A.D. 668년까지 근 천년의 력사를 가지고있으면서 조선의 력사발전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수행한 나라이다.

고구려의 시조는 세조 동명왕(고주몽)이다. 그는 구려왕의 합법적인 계승자가 되자 B.C. 277년 새로운 봉건제도를 세우고 국호를 고구려라고 하였으며 몇해안에 수도 졸본성(산성)을 건설하고 10년안에 이웃의 여러 나라들을 통합하여 동서 2 000리가 되는 비교적 큰 나라로 만들었다.

고구려는 A.D. 3년에 수도를 졸본성으로부터 국내성(집안현)으로 옮기였으며 427년에 평양성(대성산일대)으로, 586년에는 새 평양성(장안성)으로 옮겼으며 4세기말~5세기초에는 제2환도성(북평양성, 봉황성)과 남평양성(장수산일대, 후에는 한성)이 부수도로 되여 5경제(京制)가 확립되였다.

고구려는 성립후 정치, 군사, 경제, 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급속한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의 하나로 되였으며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선진적인 문화로 이름떨치였다.

고구려에서는 기원전후 몇세기동안에 봉건적제관계가 공고발전되고 제반 봉건제도가 정연하게 서게 되였으며 그것은 백제, 신라뿐 아니라 후세 조선의 여러 봉건국가들에서 국가사회제도의 기본틀로 되였다.

높은 애국심과 상무기풍을 지녔던 고구려인민들은 B.C. 2세기말부터 외래침략세력을 물리치고 전 국토와 겨레를 보위하는 성새와 방패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국토통일을 중요한 정책으로 내세운 고구려는 그 실현을 위하여 큰힘을 기울이여 1세기 70년대까지는 서쪽에서 료동반도 동남부의 여러 소국들을 통합하였고 서남쪽에서는 락랑국의 북부를, 동쪽과 남쪽에서는 개마국, 구다국, 조나국, 주나국, 동옥저와 그밖의 7개소국들을 통합하였다. 북쪽으로는 B.C. 3세기말에 고대부여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한때 부여의 여러 소국들을 종속시켰으며 B.C. 2세기초에 후부여봉건국가가 성립된 다음에도 길림일대 이남지역을 확보하고 갈사국을 통합하였다.

고구려의 국토통일투쟁은 반침략투쟁과의 밀접한 련관속에서 진행되였는데 529년 멀리 아산만계선까지 진출하여 6세기 전반기에는 삼국통일을 완성단계에 올려세웠다.

고구려는 이밖에도 경제와 문화의 여러 분야를 발전시켜나감으로써 이웃한 동족의 나라들의 경제, 문화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해외에까지도 자기의 우수한 문화를 전해주었다.

이처럼 고구려는 넓은 령토와 발전된 문화를 가진 강대한 나라였으며 유구한 력사와 열렬한 애국심, 강한 민족적자존심과 뛰여난 슬기와 지혜를 지닌 조선민족의 커다란 자랑으로 된다.